수강생 후기

[수강후기]

여전히 매 순간이 고비입니다.

  • 송*영
  • 2026-05-29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속기를 시작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나는 나의 직업도 이름도 사라지고 어느 순간 00이의 엄마로만 불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일들을 지원했지만, 내가 일을 멈춰 있었던 그 시간의 간극은 생각보다 좁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매우 적었고요. 특출나게 잘하는 것 없는 ‘보통의 사람’이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느껴지는 하루하루였습니다.

 

그러다가 속기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습니다. 내 실력만으로 온전히 내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는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길로 바로 속기 키보드를 주문했습니다.

 

기대와 희망이 가득했고,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런. 데. 이건 뭐 시작부터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고, 이게 맞나 싶은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이제 노후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호기롭게 키보드를 구매하던 저는 어느 순간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동안 인생의 모든 날들을 함께했던 ‘표준 2벌식 키보드’와 안녕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른 나이에 시작하신 분들은 정말이지 축복입니다.)

 

자꾸만 엇나가는 나의 손가락, 자꾸만 헛것을 치는 나의 손가락을 한탄하기를 수일, 아니 수개월째. 그렇게 독학으로 꾸역꾸역 150자까지 왔지만, 그렇게 큰 동굴에 갇혀 긴 시간 홀로 사투를 벌이는 날들이 반복됐습니다. 당근에 올라온 소리자바 키보드를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역시 이 길은 쉽지 않구나’, ‘나도 팔아버리고 포기할까?’ 잡다한 생각을 하며 애써 혼자 속상함을 삭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미칠 것 같았던 ‘미주동포 여러분’도 내가 이겨냈기에 다시 한 번 힘을 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었고, 그 결심으로 그제서야 화상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강의 첫날, 저는 저의 심장이 그렇게 날것으로 잘 뛰는지를 처음 알았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내 실력이 다 까발려지는 부끄러움은 기본이었고, 내 손과 심장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렸습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왜 동굴에 빠져 있었는지가 명확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저는 탈자보다는 오자가 더 많았는데, 선생님들께서는 이에 대한 분석은 물론이고 이럴 때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추가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파일을 비롯해 약어 추가 방법, 정부 부처 약어 등등 매우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습니다.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화상 강의를 통해 알게 되고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저는 애초에 화상 강의 없이 독학으로 자격증을 따려고 했었던 터라 뒤늦게 중급반부터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 부분이 가장 아쉽습니다. 잘못된 운지법이 이미 굳어졌기에 오자를 줄이는 게 너무 어려운 요즘입니다. 차라리 기본을 쌓아가는 입문 과정에서 강의를 들었다면 조금 더 정확한 운지 방법으로 속기를 시작하고 기초를 쌓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있습니다.

 

중급에서 시작해 고급반에 처음 입성하던 그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매우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딱 하루뿐이었습니다. 여전히 떨리고 부끄럽고, 매일매일이 좌절의 연속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키보드를 놓지 않고 또각또각 거리며 무언가를 치고 있습니다. 느리고 천천히 가더라도 언젠가는 그 길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믿음으로 계속 이 길을 가보려 합니다. 여전히 매 순간이 고비이지만, 그래도 오늘도 분통 터지는 나의 손가락을 달래가며 한 자 한 자 조심스레 눌러 봅니다.

 

댓돌을 뚫는 낙숫물을 종종 생각합니다. 한 방울 한 방울은 미약해 보이고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시간들이 쌓였을 때 그 한 방울들이 돌을 뚫고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저의 속기 인생도 언젠가는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희망해 봅니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그대들에게도 같은 빛이 발하길, 진심을 담아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