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 합격수기

민원 스트레스 없지만 압박감 최고인 법원 속기사 후기

  • 관리자
  • 2026-05-26

반갑습니다. 예비 속기사 여러분.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사법 기관에 입사해서 속기사로 첫 출근을 했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막상 발령을 받고 실제 재판장에 투입되자마자 자격증 준비하던 시절의 환상은 순식간에 깨졌습니다.
학원이나 시험 공부를 할 때는 아나운서처럼 발음이 정확하고 깨끗한 정제된 음성 파일만 들으면서 타이핑을 연습해 왔는데,
현실 현장은 말 그대로 야생이더라고요.
피의자나 참고인들은 조사를 받느라 잔뜩 긴장해서 목소리를 입 안으로 웅얼거리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하기 일쑤였고,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갑자기 통곡을 하거나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를 쏟아내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심지어 검사님이 질문하는 도중에 피의자가 말을 치고 들어와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들릴 때면,
순간적으로 귀가 먹먹해지면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손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실무에서 다루는 대화들은 일상적인 대화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습니다.
형사소송법이나 민법에 나오는 생소한 법률 전문 용어나 범죄 관련 은어들이 사정없이 쏟아지다 보니,
초반 몇 달 동안은 단순히 자격증 딸 때의 타자 속도보다 문맥을 빠르게 파악하고
모르는 단어를 포털 사이트나 사전에서 순식간에 찾아내는 검색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사건의 대략적인 배경지식을 미리 머릿속에 넣어두지 않으면 실시간으로 밀려드는 발언들을
도저히 타이핑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내가 치는 기록들은 한 사람의 인생이나 재판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적 증거물로 바로 쓰이기 때문에,
오타 하나, 조사 하나도 절대 틀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매일 모니터와 키보드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퇴근할 때쯤엔 어깨랑 목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고 손목이 시큰거리는 신체적인 피로가 매일같이 뒤따랐습니다.

그래도 이 직무가 가진 장점들을 생각하면 힘든 게 많이 상쇄되곤 합니다.
가장 좋은 점은 일반 행정직이나 대면 서비스직처럼 악성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면서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보는 내부 구성원들하고만 소통하면 되고, 나에게 배정된 조서나 녹취록만 기한 내에 정확하게 끝내면 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도가 정말 적은 편입니다.
업무 강도 자체도 철저하게 내 업무 중심으로 돌아가서, 내 할 일만 야무지게 끝내놓으면 눈치 보지 않고
칼같이 정시 퇴근을 할 수 있어서 워라밸 하나는 정말 확실하게 보장됩니다. (근무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에는 매일 들려오는 무거운 사건 사고 내용 때문에 감정적으로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손으로 완벽하게 교열해 낸 신문조서가 딱 접수되는 걸 볼 때면
공인된 기록을 내 손으로 완성했다는 묘한 자부심과 성취감이 생겨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