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 합격수기
지방의회에서 근무하면서 생각보다 의외였던 것들
- 관리자
- 2026-09-14
반갑습니다.
지방의회에서 속기사로 근무하기 전에는 저도 솔직히 업무가 조금 단순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의가 열리면 회의장에 들어가서 속기하고, 끝나면 작성한 내용을 정리해서 회의록으로 만들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일을 해보니 회의 내용을 기록한다는 한 문장 안에 생각보다여러 가지 일이 들어 있더라고요.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처럼 정해진 회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공청회나 간담회처럼 속기 지원이 필요한 일정도 생길 수 있고, 작성한 회의록 역시 그냥 파일 하나 만들어서 제출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사람들이 실제로 열람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속도보다도 회의에서 나오는 말의 맥락을 따라 가는 일이었습니다. 자격증을 준비할 때는 결국 주어진 음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받아치느냐에 집중하게 되는데, 의회에서는 예산이나 조례처럼 처음 들으면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계속 나오고 지역과 관련된 명칭도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분명히 들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 싶은 순간이 생겼고 그때부터 회의 내용을 미리 알고 들어가는게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속기 실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어떤 안건을 다루는지 알고 있으면 낯선 단어가 나왔을 때도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지방의회 속기사에게 지방의회와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이해나 의사진행 관련 업무 지식이 요구되는 이유도 일을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실제 직무기술서에서도 이런 이해와 전문지식을 필요한 역량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의외였던 건 회의가 없는 시간이 마냥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회의가 끝나면 큰일도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오히려 자리로 돌아온 다음부터 작성한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회의록으로 정리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회의록은 나중에 의원이나 관계자뿐 아니라 주민들이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충 이런 뜻이었겠지 하고 넘길 수 있는 문서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지방의회 회의록은 회의의 진행 내용과 결과 등을 기록해 보존하고 주민이나 관계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작성되는 기록이고, 원칙적으로 일반 주민에게 공개됩니다. 그래서 일을 하다보면 빨리 끝내는 것보다 내가 작성한 문장이 실제 발언 내용과 다르게 읽히지는 않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습관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근무하기 전과 후에 속기사라는 직업을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래도 말을 빠르게 받아 적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컸는데, 막상 업무를 접하고 나니 기록을 만들어서 관리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지방의회 채용공고를 봐도 속기업무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회의록 작성, 편집, 발간, 보존, 열람이나 홈페이지 회의록 관리까지 업무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현장에서 잘 받아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사람들이 나중에 다시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놓는데까지가 업무 라는 걸 알고 나니, 공부할 때는 별것 아닌것처럼 느꼈던 맞춤법이나 문서 정리같은 부분도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엄청 긴장하면서 일하는 분위기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정이 돌아가는 방식과 제가 해야 할 일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니 처음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회의에서 낯설었던 용어나 진행 방식도 반복해서 접하다보니 조금씩 익숙해지는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회의가 시작되면 괜히 긴장해서 평소보다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모르는 용어 하나가 나오면 거기에 계속 신경이 쓰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르는 부분이 나왔다고 그 순간에 매달리기보다는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는 알기 어려웠던 실무적인 감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속기 외의 업무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들어가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관과 채용 형태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실제 지방의회 속기사 채용 내용을 보면 회의록 관련 업무 외에도 기타 의회 업무 지원이나 사무 업무 보조가 포함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나는 속기사니까 속기만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조직 안에서 근무한다는 건 결국 그 부서의 구성원으로 같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까지 포함해서 생각하는 편이 실제 근무 모습을 이해하는 데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점을 하나 꼽으라면 제가 작성에 참여한 기록이 일회성 결과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회의 당시에는 정신없이 지나간 내용도 나중에는 정리된 회의록이라는 형태로 남고, 필요하면 다른 사람이 다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방의회 회의록 자체가 회의의 진행과 결과를 남기고 주민이나 관계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기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음성을 글자로 바꾸는 작업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려하게 티가 나는 일은 아니지만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한 조직에서 그 기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은 생각보다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힘든 부분을 꼽으라면 집중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타이핑 자체도 물론 피곤하지만 저는 오히려 계속 내용을 따라가면서 ‘지금 누가 어떤 취지로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게 더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안건이나 용어가 많은 날에는 회의가 끝났다는 것만으로 바로 머리가 쉬는 게 아니라, 이후 회의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내용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집중력이 오래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손이 빠른 것만큼이나 오래 집중할 수 있는 힘과 꼼꼼하게 다시 확인하는 성향도 이 일을 하는 데 꽤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속기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실제로 취업하면 내가 배운 걸 어디에 쓰게 될까?’ 궁금했던 분이라면 지방의회에서 하는 일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격증 시험에서 연습했던 속기 능력이 기본이 되는 건 맞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거기에 회의 내용에 대한 이해, 문서를 확인하는 꼼꼼함, 회의록을 관리하는 업무까지 더해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자격증을 따고 나면 공부가 거의 끝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새롭게 익혀야 할 것들이 보였고 그 과정에서 속기를 왜 그렇게 연습했는지도 조금씩 이해됐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잘 알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속기사라는 직업을 단순히 ‘빠르게 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기보다는, 내가 받아 적은 말이 나중에 누군가 다시 확인하는 기록이 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서 공부하면 실제 업무를 바라보는 느낌이 꽤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근무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속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고, 결국 정확하게 듣고 내용을 이해하고 다시 확인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 전체가 속기사의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